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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과거의 그림자

moneypro100 2024. 9. 16. 22:52

유정의 공방이 문을 연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아침 공방에 도착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공방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유정의 도자기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공방의 분위기를 좋아해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유정은 매일 새로운 손님들과 만나면서 설렘과 기대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설렘 속에서도 문득문득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라 유정을 괴롭히곤 했다.

예상치 못한 만남

그날도 유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방의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도자기를 구경했다. 그중에는 어제 만났던 손님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유정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공방의 하루를 차분하게 이어갔다. 그러던 중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유정은 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오랜 친구이자, 한때 유정의 첫사랑이었던 인욱이었다.

인욱은 오랜만에 본 유정을 반갑게 바라보며 웃었다. “오랜만이네, 유정아. 너 여기서 공방 한다는 소문 듣고 한번 와봤어.” 유정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인욱과 유정은 대학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인욱은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유정도 결혼과 가정생활에 집중하며 그와의 연락이 끊겼다. 두 사람은 그동안 쌓인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첫사랑의 흔적

인욱은 공방을 둘러보며 유정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너 여전히 이런 걸 좋아했구나.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할 때도 그랬잖아. 그때도 너 참 열심이었지.” 인욱의 말에 유정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시절의 유정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꿈이 많았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다른 길을 택해야 했다. 인욱은 그때 유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사람이었다.

“그래, 그때는 참 즐거웠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유정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하며 인욱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방을 열기까지의 과정과 도자기 공예를 시작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일을 하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에 대해서. 인욱은 유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너답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는 모습 보니까 참 좋다. 너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것 같아.”

인욱의 말에 유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유정이 밝아 보인다면, 그건 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주는 평온함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욱과의 만남이 유정에게 잊고 지냈던 과거의 그림자를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 유정은 인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던 사이였다. 비록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와의 추억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정의 숨겨진 감정

공방을 둘러보던 인욱은 유정의 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그것은 유정이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만든 도자기 화병이었다. 고운 색감과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이 작품은 유정이 자신의 감정을 담아 만든 것이었다. 인욱은 그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참 예쁘다. 너의 감정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아.”

유정은 인욱의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그는 예전부터 유정의 작품에 담긴 감정을 잘 알아챘다. 이 화병에는 유정이 공방을 열기까지의 고민과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작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유정은 조용히 말했다. “이 작품은 나한테도 좀 특별해.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을 담고 싶었어.”

인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너답다. 예전에도 그랬잖아. 너의 작품은 늘 솔직하고 진실했어.” 유정은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욱은 여전히 유정의 마음을 잘 읽는 친구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추억에 젖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

인욱이 공방을 떠난 후, 유정은 한동안 그의 말과 표정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인욱과의 만남은 반가웠지만, 동시에 유정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과거의 감정들을 끌어올렸다. 그 시절 유정은 더 많은 꿈을 꿨고, 더 많은 것들을 이루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유정은 지금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그 모든 경험들이 소중했다.

공방을 정리하며 유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욱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난 뒤 유정이 홀로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멀리 돌아온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공방이라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유정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그날 밤, 유정은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공방에 옛날 친구가 왔었어.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봤네.” 남편은 유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가웠겠네. 그 친구도 네가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보면서 뿌듯했을 거야.”

유정은 남편의 말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인욱과의 만남은 반가움과 함께 작은 떨림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유정은 그 떨림을 지나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며 더 단단해진 느낌을 받았다. 인욱과 나눈 대화는 유정에게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유정은 침대에 누워 오늘의 하루를 되새겼다. 공방은 이제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 녹아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추억과 감정들이 얽혀 있지만, 유정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공방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의 소통이 유정에게 더 많은 용기와 새로운 꿈을 안겨주고 있었다.

유정은 오늘의 만남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녀는 그 모든 순간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유정의 이야기는 이제 막 절정으로 향해가고 있었다.